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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새로운 형태"에 대한 과학적 검증 - The Discovery

잡스런 2017. 11. 22. 15:35

"존재의 새로운 형태"에 대한 과학적 검증 : The Discovery



디스커버리(2017)

The Discovery


감독  찰리 맥도웰

주연 제이슨 시걸, 루니 마라, 로버트 레드포트








제목이 디스커버리라고 하니, 무슨 우주적 발견과 같은 내용인 줄 알았다.

예전 발사 후 폭발해버린 우주왕복선 이름이 디스커버리호(아닌가 챌린저호였나?)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 기억에 인이 박혀서 이런 선입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옛날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스팅"에서 폴뉴먼과 함께 잊혀질 수 없는 배우였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다. 이것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로벗이 2000년대 이후 부쩍 영화 출연이 줄어들어서 올해 나온 영화가 더 궁금하기도 했고...

그런 연유로 다운(?)을 받아서 보기시작했다. 뭐 다운의 부정적 의미야 알겠지만,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고 배우는 궁금하고 순전히 지적 호기심을 이유로 정보의 공유를 몸소 실현하였으니, 부정적 의미 보다야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라는 측면에서 봐줬으면 한다. ㅎㅎ


이 영화는 제목 처럼 "발견"한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원로 과학자 토마스로 연기한 로벗은 "존재의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오랜시간에 걸쳐 시간과 돈을 투여했다.

사실 "존재의 새로운 형태"는 바로 "사후세계"를 의미한다. 

로벗에 의해 제기되고 압도적 증거가 제시된 "사후세계"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거리낌 없이 자살을 한다. 과거든 현재든 "사후세계"라는 것은 종교적 신념이 만들어 낸 것으로 이해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이러한 개념의 존재가 과학적 증거로 어느정도 공인되는 사회가 도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일반적인 사람은 현실적 어려움에 대하여 "극복"이라는 수단으로 헤쳐나가려 하지 않고, "자살"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다. 왜냐면, 사후에 별도의 세계가 존재하니,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음 이후에 영혼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 가설과 증명에 의해 믿기 때문이다.

2008년도 부터인가? 미드 중에 프린지(Fringe)라는게 있다. 사후세계는 아니고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상대편 평행우주에 있던 사람이 다른쪽으로 넘어와 그 사람의 역할을 하면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후세계의 존재를 확인한 이 영화와는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영화의 중간에는, 사후세계를 이미 존재하는 다른세계로 규정하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닐까고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프린지에서 규정하는 평행우주 세계와 유사한 면도 없지않다.


영화에서 로벗은 과학자로서 사후세계(?) 혹은 정신세계(기억)을 기록하는 장치를 만들었고, 이 장치를 통해 이미 죽은 사람의 생각(?) 혹은 사후세계(생존에는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루는)를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로벗이 아니라 "윌"이라는 역할을 한 제이슨 시걸이다. 이 사람은 신경외과의사이고, 로벗의 아들이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여인(아일라, 루니 마라)를 만다고 그녀를 자살로 부터 구해주면서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또 우연한 기획에 그녀가 죽자 로벗이 만든 기억기록장치를 통해 사후세계로 들어가 그녀를 만나고 있다. 그 가상의 세계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하던 중, 그녀와 죽음을 매개로 여러차례 다시 만나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결국 영화는 주인공인 윌이 자주갔던 바닷가에서 오래전 아일라를 만나면서 애매모호하게 마무리된다.


영화를 처음 보기 시작했을 때는 이 영화를 계속 봐야하나 싶을 정도로 지루했다. 무엇보다 최근 오락영화에서 익숙한 압도적 음향도 없고, 최근 영화에서 강조되는 인상적인 영화음악도 없다. 그럼에도 여기서 몇자 끄적거리게 된 것은 지리함에 익숙해 질 때 나오는 반전이다. 위에서 잠깐 스포하면서 나왔던 것처럼, 윌과 아일라의 만남이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은 후에 계속 다시 만나는 타임슬립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적"적이었다. 이 반전적 결론이 지리한 지루함을 일신시키는 계기리라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스팅"(1973) "위대한 개츠비"(1974)에서 상큼한 미청년로, "내츄럴"(1984)에서 불운의 야구선수로, "스니커즈"(1992)에선 예리한 정보분석가로 기억되던 로벗이 이젠 지긋한 할아버지 본연의 모습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1936년생이니 벌써 팔순을 훨 넘겼다. 배우라는 직업에서 정년퇴직이 없음은 분명하지만, 이 나이에도 주역으로서 열정적으로 영화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용 즉 "사후세계"와 로벗의 나이가 자꾸 교차되어 연상된다. 어느날 신문기사를 통해 그의 부고소식을 듣게된다면, 영화에서 그가 Discovery한 "존재의 새로운 형태"에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길 바랄뿐이다.(뭔넘의 영화평이 부고까지 갔는지.. ㅠㅠ)

2017.11.22 HiS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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