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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최초로 소개한 미국 언론 - 1919.3.10字

잡스런 2019. 2. 28. 10:11

3.1운동을 소개한 미국 최초의 언론보도는 3.13일이 아니라 3.10字다


3.1운동을 소개한 1919.3.10字 미국 언론을 찾았다.

올해(2019년)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더 구체적으로 각 기관 및 학회 등에서 3.1운동 기념을 위해 여러가지 행사를 갖는다.

이제 내일이 그날이니, 거대하고 다채로운 일들이 많으리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몇년전 부터 준비한 3.1운동 지도를 공개하였고...  http://db.history.go.kr/samil/ 작년을 제외하곤 나도 일정부분 지분(?)이 있다고 해야 하나? ㅎㅎ 하여간 고생한 끝에 좋은 평을 듣는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제공하니 기쁜일이다. 그래서 어제(2.27) 일민미술관에서 학술회의도 했고..


오늘(2.28) 여기에서 밝히려고 하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최초 공개가 아닐까 싶다.

전공자가 아니라 3.1운동 관련된 논문을 쓰려니 어렵고, 논문이 아닌 걸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으로 블로그를 선택했다.


제목을 3".1운동을 소개한 미국 최초의 언론보도는 3.13일이 아니라 3.10字다"라고 뽑기는 했지만, 사실 그날짜를 아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지난 1월 4일 처음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전공자들에게 물어서 확인했을때, 대부분 그런 디테일한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디비피아 등의 논문을 찾아도 잘 확인이 안되고, 그래서 보도를 중심으로 찾아보니 아래와 같다.


3.1운동에 대한 소개가 미국사회에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19.3.13字 New York Times라고 알려져있다. - 중앙일보 [미주중앙] 2014.3.4(서한서 기자) https://news.joins.com/article/14055307

이 뉴욕타임즈 기사는 당시 A.P. 및 U.P. 통신원이었던 Albert Wilder Taylor가 서울發로 보내어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기사에 따르면

마이크로필름판 뉴욕타임즈를 확인해서 1919년 3월 13일 3면에 실린 "Koreans Declare For Independence"(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그러면서 기사 본문에는 "인권과 주권 회복의 열망을 담은 3.1운동을 국제사회에 알린 최초의 기사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크리스천사인언스모니터 등 미국의 유력 언론은 3.1운동에 일제히 주목했다."고 하고 있다. 그러니깐, 3.13일字 뉴욕타임즈가 곧 3.1운동을 처음 미국에 보도한 언론으로 전하고 있다.

사실 뉴욕타임즈 보다 더 크게 알린 신문은 Alaska의 The Cordova Daily Times인데, 여기는 1면 톱으로 뽑았다. 게다가 뉴욕보다 시간도 빠르니, 약 4시간 정도 앞서서 보도했다고 해야 하나? ㅎㅎ


그런데 3.1운동을 기념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뭘까고 생각하다가 미국 고신문을 뒤적거리면서 새로운 기사를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1운동을 미국에 처음으로 소개한 미국 언론 지방지이고 날짜는 3.10字다.

2014년 미주중앙에서 보도한 3.13 보다 3일 빠른 기사이며, 

뉴욕타임즈는 3면기사인데, 알래스카 The Cordova Daily Times에서는 1면 톱이다.


3.10字 미국 신문에 나온 3.1운동은 한군데 언론사만을 통해서 나온 건 아니다. 우선 목록부터 나열해 보자.(ABC순)


Chickasha Daily Express (Chickasha, Oklahoma) 1919.3.10 p.1 "Korea To Demand Her Independence"

- Evening Capital News (Boise, Idaho) 1919.3.10 p.2 "Korea To Ask Recognition Of Independence From Japanese At Paris Meet"

- Evening Public Ledger (Philadelphia) 1919.3.10 p.2 "Korea Defies Japan"

- Great Falls Daily Tribune (Great Falls, Montana) 1919.3.10 p.1 "Korea Declared Independence : Revolt From Japanese Rule is Announced"

- Richmond Times-Dispatch (Richmond, Virginia) 1919.3.10 p.1 "Korea Declares Independence"

- South Bend News Times (South Bend, Indiana) 1919.3.10 p.1 "Korea Will Demand Freedom From Japan At Peace Congress"

- The Arizona Republican (Phoenix, Arizona) 1919.3.10 p.1 "Korea Declared Freedom"

The Daily Capital Journal (Salem, Oregon) 1919.3.10 p.1 "Korea Will Demand Her Independence"

- The Daily Gate City and constitution-Democrat (Keokuk, Iowa) 1919.3.10 p.6 "Independence of Korea"

The Omaha Daily Bee (Omaha, Nebraska) 1919.3.10 p.1 "Koreans Declare Their Independence of Japan"

- The Seattle Star (Seattle, Washington) 1919.3.10 p.9 "Korea To Ask Independence"

- The Topeka State Journal (Topeka, Kansas) 1919.3.10 p.1 "Korea Want Free"


오레곤, 아이다호, 펜실베니아, 몬태나, 버지니아, 인디아나, 아리조나, 오클라호마, 아이오와, 워싱턴, 캔사스주 등 미국 전역에서 3.1운동을 알리고 있다.


위의 대부분의 기사에서 샌프란시스코發 3.9 혹은 3.10 U.P.를 통해서 3.1운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두명의 한국인(Henry Chung(정한경), 이승만)이 파리강화회의에 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을 다루면서, 같은 맥락에서 3.1운동 역시 독립을 요구한 행동으로 인식했고, 그에 따라 기사제목을 위와 같이 적었다. 

위의 기사는 대부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주목되는 매체는 Great Falls Daily Tribune과 The Arizona Republican이다.

다른 매체에 비하여 이 두매체가 가장 자세한 소식을 전한다. 물론 전하는 내용은 거의 같다.


Great Falls Daily Tribune 1919.3.10 1면Great Falls Daily Tribune 1919.3.10 1면


Great Falls Daily Tribune은 위의 기사처럼 3.1운동 관련 내용을 1면 탑으로 올렸다. 기사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3.9일자 샌스란시스콘발 전문에 따르면, 상하이로부터 샌프란시스코로 전문이 들어왔고, 한국이 3.1 토요일 오후 1시를 기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했다고 한다. 현순 목사(Korean National Independence Union)는 상하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연락을 취해 3.1운동을 알렸다고 전한다. 상세한 내용으로는 3,000여명의 기독교인을 포함한 천도교도, 대학생, 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 등 3,000,000 여명의 군중이 3.1 서울, 평양 그리고 다른 주요 도시에서 오후 1시를 기해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고 한다. 손병희(Zon Hyun Hi ; Son Piung He), 이상재(Rhee Sang Chai), 길선주(Til Sun Chu) 등의 이름도 등장하며,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단 파견과 관련 내용도 보인다. 

The Arizona Republican의 기사는 몇글자를 빼고는 동일하다. 다만 이 두 신문이 발행된 몬태나주와 아리조나주가 경도상 유사하기 때문에 아마 거의 비슷한 시간에 발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The Arizona Republican 1919.3.10 1면The Arizona Republican 1919.3.10 1면



위의 신문들은 3.9 혹은 3.10 샌프란시스코發 전문을 근거로 3.10字로 3.1운동 소식을 미국에 가장 먼저 전한 신문 매체들이다.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이 뒤늦게 미국에 전해지게 된 것은 일본의 보도통제 즉 무선(wireless)와 전보(cable line)가 일본측에 의해 장악되었기 때문이라고 전하기도 한다.(Evening Capital News 2019.3.10 2면)


이후 3.13일자 서울發 A.P.를 인용한 기사들이 뉴욕타임즈 등에 실렸고, 알래스카의 Cordova 지역신문 The Cordova Daily Times(1919.3.13 1면)에는 "Korea Demand That It Be Freed From Japan"이라는 1면 톱타이틀과 함께 "Korea Throws Off Its Yoke of Imperialism and Declares Its Independence From Japan"이라는 제목하의 3.1운동 관련 기사를 싣고 있다. 그 내용은 "3.1운동은 2,000만 한국인을 대표하며, 정의와 인권의 이름을 이야기 하고, 43세기에 달하는 독립국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한다"고 전한다. 


3.1운동 직후의 미국 신문매체를 정리하자면, 

첫번째, 3.10字 기사가 최초의 기사가 최초의 기사이며 전국 각지에서 300여 만명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두번째, 3.10字 기사 중에서도 1면 톱이 있다.(Great Falls Daily Tribune)

세번째, 3.1운동 소식은 상하이-샌프란시스코發 U.P 계열과 서울發 A.P. 기사로 나누어지고

네번째, 3.1운동 직후 일본의 보도통제가 극심하였다.

다섯번째, U.P. 계열 소식은 3.1운동 소식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파견코자 하였던 헨리정과 이승만에 기사가 병렬로 나타나고 있다. - 3.8字 Richmond Times-Dispatch 기사(Two Koreans Bound For Peace Parleys Refused Passports)에 파리강화회의가 가려고 신청한 여권이 거부되었다는 내용을 이어서 계속 받아쓰고 있는 것 같다.

여섯번째, A.P 계열 소식은 3.1운동과 함께 독립선언문의 내용일부까지 소개하고 있다.(1919.3.13字, 알래스카 The Cordova Daily Times, 뉴욕타임즈 등)


참고로 3.1운동을 해외알린 첫 외신보도는 3.4字 China Press(대륙보)라고 한다. - 동아일보 2019.2.19 3.1운동을 알린 첫 외신보도 中 차이나 프레스 지면 찾았다.


마지막으로 Henry Chung(정한경)이 1921년 쓴 3.1운동 관련 책 "The Case of Korea"(1921) 367쪽에 실린, 3.1운동 전국현황도를 첨부한다.

The Case of Korea, 1921Henry Chung, The Case of Korea, 1921, p.367



2019.2.28 HiSTOPiA™-주성지



2019.3.13 추가

현순목사가 상하이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전문을 보내고, 그걸 UP가 미국내에 퍼뜨린 것으로 이해되는데, 현순목사의 전문을 받은 사람은 안창호로 생각된다. 


""300만 명의 독립단이 예수교도, 천도교도와 함께 들고 일어났다"는 현순의 3.1운동 통보전보를, 정한경은 3월 9일 밤 안창호로부터, 이승만은 3월 10일 각기 서재필과 정한경으로 부터 들었다."(Log Book of S. R., 1919년 3월 10일 : The Syngman Rhee Correspondence in English, 1900~1948, Vol.2, p.213) ; 오영섭, 2012, 대한제국임시정부 초기 위임통치 청원논쟁, [한국독립운동연구]41,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p.101 주54에서 재인용)


위 인용문에서 보면, 당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안창호는 3월 9일 정한경(Henry Chung)에게 3.1운동 관련된 소식을 전한다. 따라서 현순목사의 전문은 안창호를 거쳐 UP쪽으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UP계열의 뉴스라서 그런지, UPI뉴스에서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했다. 관련 기사는... 아래

http://www.upinews.kr/news/newsview.php?ncode=1065599774768652 


그전에 간단하게 실린 기사는 ... 아래

미주중앙일보 2019.2.28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7016384

UPI뉴스 2019.3.1 http://www.upinews.kr/news/newsview.php?ncode=1065599638988205



2019.3.15 추가

국사편찬위원회 刊, [한민족독립운동사] 3(3.1운동) III장. 3.1운동의 확산 7. 3.1운동과 재미한인(필자 : 방선주) 2) 미주한인의 3.1운동 지원활동(1919년 3월 9일~6얼 30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http://db.history.go.kr/id/hdsr_003_0030_0070_0020

"3월 9일 샌프란시스코 오전 11시, 국민회 중앙총회장 안창호는 상해 현순목사로부터 독립운동폭발의 전보를 받고 곧 회전을 치고 이승만과 정한경에게 타전, 또 각 지방회와 서재필에게도 타전하였으며 샌프란시스코의 영자신문들에게도 전보복사문을 돌렸다. 오후 7시 30분 중앙총회협의회를 옥스크리트 한인교회에서 소집하니 '재류동포 남녀노유 전체가 모두 출석하였는데 미친 듯 만세를 부르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 기쁨에 겨워 눈물을 뿌리는 자가 많더라.' 중앙총회장은 겨우 좌석을 정돈하고 여섯가지 큰 의안을 제출하여 통과하였으니......

3월 9일 호노룰루, 현순은 같은 내용의 전볼르 하와이국미회에도 보내어 하와이에도 9일 일요일 오전에 받았다. 하와이는 샌프란시스코 보다 시차가 일러 하와이에서 받은 시간은 오전 8시 경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교회집회를 통해서 소식의 전파가 쉬웠고 오후에는 600여 명이 모여 감격의 만세를 불렀다. 하와이지방총회의 이종관(李種官) 총회장은 안창호에게 '오늘 한국독립선언의 소식을 받으셨읍니까 이번 외교의 전권은 중앙총회장에게 맡기나이다'라고 타전하였는데 .....

3.1 독립운동 발발의 소식은 3월 4일 일본에 있는 영자지들은 이미 발표하였으나 독립선언 자체는 없었고 미국과 하와이는 현순목사의 전보로 10일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의 영자신문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보도하였다. [뉴욕타임즈]는 13일에야 취급하였고 여타의 신문들도 비슷하였다. 실로 현순을 통한 국민회에서의 소식전파가 미국 모든 보도의 원천이었다. [3.1독립선언문] 자체의 도착은 퍽 늦어 4월 14일의 [신한민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는데, 국내에서 미주로 독립선언문을 밀송한 것으로, 미국의 편지검열에 걸린 것이 있어 그 일단을 규지(窺知)할 수 있다. 즉....."

위의 내용에 따르면 3월 13일이 아닌 3월 10일 미국 신문에 첫보도가 나간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그 실물을 찾은 것은 이번 작업이 최초인 셈이다.

3월 10일 첫보도가 나갔다는 블로그의 내용은 자료를 덜 찾아본 필자의 실수가 맞으며, 다만 그 동안 실물이 확인된 3월 13일자 [뉴욕타임즈] 이전에 3월 10일자의 다양한 신문의 실물을 찾은 것이 이번 노력의 성과인 셈이다.


구체적인 경로를 다시한번 밝히면, 상해의 현순 목사의 전보가 샌프란시스코 안창호에게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 경이며, 안창호가 헨리정, 이승만, 서재필 등에게 알리는 과정 및 샌프란시스코의 UP를 통해서 미국 전역의 신문에 보도된 것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3월 10일자 신문에서는 3월 9일 및 3월 10일 샌프란시스코發 기사로 표시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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