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안 조상 자랑하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본인이 내세울 것이 없다보니, 조상의 명성에만 기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조상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는 것까지 비난할 일은 아닙니다. 거짓 사실로 조상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일 뿐.
요즘 들어 귀부(龜趺)까지 갖춘 근대 인물의 신도비(神道碑) 급 비석이 부쩍 늘었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일반인은 읽지도 못하는 한문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신도비는 2품 이상의 고관이나 훌륭한 학자의 무덤에만 세울 수 있었습니다. 무덤의 주인이 자신에게 걸맞지 않은 너무 큰 옷을 입은 셈입니다.
이런 폐습은 요즘만의 문제는 아닌 모양입니다.
위 구절은 애국지사였던 매천 황현 선생의 시에 나옵니다. 원 제목은 〈2월 15일에 조부의 묘소에 작은 비석을 세웠는데, 일을 마치고 감회를 기록하다.[二月十五日竪短碣于王考墓 事竣志感]〉입니다.
“우리 조부는 이름난 분이 아니니, 대가의 거창한 비문이야 필요치 않네.” “자손의 붓에서 나오게 되면, 후인의 의심을 야기하기 쉬운 법”
거짓을 전하지 않겠다는, 조상을 위하겠다고 하다가 도리어 욕을 먹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생의 학자적 양심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