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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과 도로명 주소

잡스런 2013. 9. 7. 22:44
역사지리를 배우면서 처음으로 듣는말이 점-선-면이다.
그러니깐 거점이 있고 이를 이어주는 선이 있고, 복잡다단한 선들이 엉켜서 면을 이룬다. 이러한 과정을 겪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공간이 만들어 진 것이다.

우리는 사는 곳은 이미 공간 즉 면이라는 게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우리는 계속 면 즉 공간을 토대로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다시말하면 우리에겐 면 중심의 공동체 생활이 수백년에 걸텨 체화되어 있다는거다.

그래서 얼마전까지 사용하던 주소 개념인 동리가 익숙한 건 그런 그 최소단위의 공간 공동체가 이미 몸과 인식 속에 인이 박혀있다는것이다.

우리의 이런 공간 중심 공동체와는 달리 미국의 지역 개발이라는 것은 개념이 다르다. 
황무지를 내달려 선을 만들고 그 선을 중심으로 주변에 사람이 살아간다. 우리 처럼 먼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공간들을 선으로 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에겐 선이 익숙하다.
그런 그들의 인식을 수백년을 이어온 공간 중심 공동체 사회에 이식하고 있는것이 도로명주소이다.

생활 터전의 발생방식이 다른 곳에 미주지역적 편리를 이식시키고 있는 것이다.


수백년 동리명으로 공간이라는 개념속에서 거리낌 없이 살던 사람에겐 아무런 불편이 없고, 그 가운데 태어난 생명들에게도 불편은 없었다.

오히려 이런 공간 중심 생활터전이 익숙치 않은 몇몇 외국인의 불편을 근거로 도로명주소를 적용하는 해괴한 짓거릴 지금 추진하는게다.


게다가 역시 이천여년을 살며 변화해온 고유의 땅이름들은 사라지고 요상스런 영어이름도 도로명으로 생겨난다. 


이런 우리 고유의 땅이름이 한번 잊혀진 건 일제 강점기다. 벌말(벌판에 있는 마을) 이런 우리말 땅이름이 봉현(벌봉+고개현) 같은 한자로 바뀌면서 원래의 이름이 완전히 잊혀지기도 했다. 이런식으로 사라져버린 땅이름을 겨우 되새겨 찾아내기 시작한 게  90년대 말 시군지 간행 이후 부터라 생각된다. 그래서 90년대에서 2000년대를 거치며 간신히 복원해놓은 우리 땅이름이 면에서 선으로 후퇴해버린 개념상실의 도로명주소 강행인 것이다.
실상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간 중심의 주소체게에 불편을 느끼지 못했고 또 그 주소에 최적화된 우편행정, 택배 등등 그 모든 걸 다시 배워야하는 기회비용.. 공식적으로 비용으로 추산되지 않는 숨겨진 또 헤아릴수 없는 비용이 크다.


어찌 다시 최적화된 공간에 적응하며 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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