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s러운

생에 첫 PDA 본문

雜雜/雜文

생에 첫 PDA

잡스런 2014. 2. 3. 23:16

근 10년은 된 묵은지와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젠 어찌할 수 없는 애물단지와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 수중에 그런 제품이 하나 있다. 바로 PDA다...


지금이 2014년이니깐 불과 6~7년 쯤 전이다.

사실 6, 7년 쯤 전이라면 오래되었다면 오래되었고, 필자 처럼 연식의 노후화가 진행 중에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 안되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찌보면 6~7년 쯤 전이 '불과'에 불과할 것이라는 말도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때는 내가 몰던 구형 스포티지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떡하니 장착되어 있었다. 

HP RX3715라는 제품명의 PDA다.

당시 네비게이션이라면 아이나비와 매피라는 브랜드가 대종을 이루고 있었을때고, 저마다 2~5인치 정도의 단말기를 생산하던 때다. 게다가 그것들이 50만원을 호가하는 당시의 기준에서 고급을 구가하는 것이다.


그때 조금 IT에 밝은 사람이라면 흔히(?) 가지고 다니던 PDA에 네비게이션 프로그램을 사서 인스톨하고, GPS수신기와 거치대를 구입하여 자동차 앞에 자랑스레 달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보통의 네비게이션이 전용 단말기로만 나오던 때라서, 차에서는 네비게이션으로 사용하고 그걸 떼어내어 들고다니면서는 일정관리 등 모바일 디바이스로 사용하는 일종의 얼리어답터인 것이다. 그래서 얼리어답터의 반열에 PDA가 들어가는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PDA를 사용하던 것은 6~7년년 전 보다 조금 더 전이다. 굳이 따지자면 2005년 경인데...

지금 몇자 끄적여보는  HP 당시 컴팩의 PDA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사람이 필자다.

사실 적극적이라곤 해도, 모바일 업무나 그런 까지는 아니고 그냥 일정과 엔터테인먼트에 강한 유저 중의 한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같다.


사실 처음 PDA라는 것을 접하게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1998 이후 인터넷이라는 것이 PC통신을 넘어선 대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전에 이메일이 아주 어렵사리 자리잡은 이다. 랜선도 아닌 모뎀을 통해서 인터넷을 접속하던 시절인 1999 혹은 2000 어느 시점에선가 국내 모기업(지금은 사라졌다)에서 PDA 런칭하면서 자사 PDA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개인정보에 그다지 조심할 때가 아니라서 경품이 있는 이벤트라면 무조건 반응을 하던 시기였다.

사실 넷포츠(온라인 레져 스포츠 연계 사이트)라는데서 하는 이벤트에 처음 당첨되었다. 그게 아마 2000 쯤인데, 그때 랜덤으로 당첨자를 뽑는 프로그램 제작자가 후배라서 비싼 아니고 그냥 반팔티 장을 받은 것이다. 이런 짜여진 경품 당첨이 아니라면 지지리 복이 없는 필자에게 PDA런칭을 둘러싼 이벤트에 당첨된다는 것은 정말 하늘을 기쁜 것이었고, 사실 머리에 털이 이후로는 제대로된 경품 당첨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경품으로 PDA라는 것을 받게된 다는 것에 개월간의 흥분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매일 사이트에서 확인하다보니, 언젠가 갑자기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런칭한 PDA 경품으로 수는 없다고 하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 회사에서 선택사항으로 1. 계속 기다려 본사 경품 PDA 받을 . 2. 본사 PDA 대신 다른 PDA 받을 . 이라고 나왔다. 사실 런칭한 PDA 스펙은 훨씬 좋기는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의 경험으로는 기다린다는 것은 못받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후자 그러니깐 2번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인생의 모바일 디바이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팜3e(Palm IIIe)PalmOS를 기반으로한 모노톤 PDA : Palm IIIe

2000년대 초반 PDA 절대강자 Palm III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인터넷을 통한 경품 관련 이벤트에서 굳이 대체 경품을 지급한 경우는 별로 없을 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런 런칭 이벤트가 잘되건 안되건 여러사람들의 정보를 모으는 것이 목적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인것도 있듯이, 당시에도 인터넷 사용자가 극히 일부분인 상황에서 온라인 이용자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이벤트의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 경품을 지급한 이름모를 "M" 회사(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은 지금도 본받을만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여튼 그렇게 대체 경품으로 받은 것이 바로 3(Palm IIIe) PDA 라는 것이다.

컬러도 아닌 모노의 PDA 사실 당시에는 절대 강자였다. 지금처럼 USB PC연결의 주된 수단도 아니던 시절에 시리얼포트1(serial port : 컴퓨터 뒷편에 모니터 꼽는 것 처럼 생긴 것들..) 이용하여 연결하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데이터싱크를 주도했던 PDA 아웃룩익스프레스와 함께 사용하면 가공할만한 일정과 연락처 관리가 되는 아주 핫한 디바이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를 일정관리, 금융권 비밀번호 관리 그리고 게임기라는 단순한 기계로 사용하던 어느날...

계속 들고다니면서 생긴 생활 스크래치와 오염을 한번에 해소하고자 가방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역시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만나면 궁극의 강자는 역시 아날로그다. 아날로그로서 물과 원심력을 이용한 세탁기를 첨단 디지털 디바이스가 이길 없다. 스크래치와 오염이 깨끗하게 되긴하였어도, 문제는 액정이 뜨질 않는다는 거다. 지금처럼 디바이스처럼 물로 씻어도 되는 스마트 기기가 나오기 전이라 이런 디지털 디바이스는 물에 절대적인 약자였다. 그래서 세탁기와 함께 3 내인생에서 누락된 디바이스로 전락되는 순간이 되었다.

 

 

HP rx3715HP rx3715와 슬림한 기본케이스



엔터테인먼트에 최적화된 HP RX3715

그러던 가운데 2005 즈음일게다. 세탁기의 폭압에 날라간 대체품을 찾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다 구입하게 것이 바로 윈도우 모바일(윈도우 CE) 사용하는 사진의 PDA이다. 당시 유행하던 여러 가지 디바이스 중에서 이걸 고른 이유는 네트워크도 아니고 퍼포먼스도 아니다. 따지고보면 퍼포먼스라면 그렇다고도 있긴하겠지만, 디바이스의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기업윤리 결코 좋아할 없는 회사의 칩이 내장된 디바이스는 동영상, 음악 엔터테인먼트 쪽에 최적화된 기계였다. 다시말해서 대부분의 CPU 통해서 엔테인먼트 파일을 돌리시 배터리를 상당부분 까먹는 것이 당시 대부분의 디바이스였지만, 것은 동영상등의 파일을 돌릴 다른 것들 보다는 배터리 소모량이 적은 편이었다. 이게 것을 선택한 번째 이유였다

왜냐하면 당시 PDA 구입하면서 사야하는지를 고민했고, 그러다가 이걸 통해서 네트워크 그런것도 있지만 동영상을 돌려보려는 의도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해서 구입한 것이 HP RX3715이고, 처음으로 봤던 동영상이 바로 카우보이 비밥이다.

 

 

 



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 (2003)

Cowboy Bebop the Movie: Knockin' on Heaven's Door 
7.1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출연
야마데라 코이치, 이소베 츠토무, 코바야시 아이, 이시즈카 운쇼, 구자형
정보
SF, 애니메이션 | 일본 | 116 분 | 2003-10-03



재패니메이션의 밝은 후배의 권유로 보기 시작한 이 시리즈 애니메이션은 그 때까지 애니라고는 마징거, 서부소년차돌이, 빠삐, 아톰, 마린보이 정도만 알고 있는 나에겐 충격이었고 이후 필자가 어둠의 경로를 뒤지고 다니게끔하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래서 PDA용으로 인코딩된 파일을 다운 받으면 다행이겠지만, 피씨용 파일을 다운받아서 인코딩이라는 고도의 컴퓨팅(?)을 통해서 파일을 변환하여 PDA에 넣어놓고 다니며 출퇴근 시간을 적절하게 활용하던 기억이 있다 그 인코딩 프로그램 중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게 바로 바닥인코더이다. 지금이야 3.0 버전 이상이 나온 것 같은데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퀄리티 영화파일이 없던 터이고, 게다가 변환 후에는 더 화질이 떨어지는 것이라서 그 이상의 인코팅 프로그램은 없었던 것 같다.

 

바닥인코더PDA에 들어갈 동영상을 편집하는 프로그램인 바닥인코더(최신버전)

 


아무리 인코딩 파일이라고 하더라도 동영상을 보는 프로그램이 없으면 보기가 어렵다. 그런 동영상 플레이어등 다양한 프로그램 그러니깐 지금의 어플리케이션을 구하는 곳은 역시 어둠의 경로였다. 뭐 어느정도 경제력이 있었다면 모두 정품을 구입했겠지만서도, 당시 그럴만한 경제적 혹은 심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모든 PDA이용자들은 네이버의 카페 혹은 Todayppc사이트에 접속해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설치하곤 했다. 필자 역시 그런 어둠의 경로를 충분하게 경험하였고, 어쩌면 지금도 여타의 다른 경로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

 

투데이피피씨 웹사이트대부분의 PDA 이용자라면, 이 투데이피피씨 웹사이트에서 프로그램을 내려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들고다닐 수 있는 디바이스인 PDA 활용의 정점이라면 모바일 네트워크이다. 구입 당시인 2005년도만 하더라도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학교에서는 교내에서는 누구라도 와이파이를 이용해서 모바일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었다. "넷스팟"이라는 지금의 "K"사의 유료 네트워크였는데, 학교에서는 1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아이디를 줬고, 일주일에 한번씩 가는 학교에서 그 모바일 네트워크를 달마다 신청해서 사용하기는 그리 편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박봉의 월급장이가 한달에 몇만원하는 거금을 들여 "넷스팟"을 사용할수도 없는 형편이고해서 그렇게만 적당히 사용했다.

그러던 중에 2006년 3월 미국 출장이라는 걸 가게되었고, 대형 호텔이 아닌 중소 호텔에서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게다가 구글 본사 근처인 스탠포드와 팔로알토 지역은 공용 와이파이가 널려 있었기도 하다. 지금처럼 가벼운 노트북이 있던 시절도 아닌 그때는 노트북 없이 출장을 갔고, 이 PDA의 막강한 와이파이 기능을 이용해서 당시 가장 핫한 메신저 프로그램인 MSN메신저를 이용해서 실시간 국내와 채팅을 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네이버 메일을 통해 주변 지인들게 소식도 전하는 소위 "유비쿼터스" 출장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그땐 그 조그마한 디바이스의 신기함에 지속적인 웹서핑으로 미국의 첫밤을 뜬눈으로 지냈던 기억조차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갑작스럽게 특히 지난해(2013) 9월 이후 실로 오랜만에 포스팅을 하게 된 것은 모두 친절한 후배를 둔 탓이다. 김*, *호산 후배가 1월 어느날 연락이 오더니, 2월 5일에 개최되는 못버려박물관 네트워크 파티에서 IT가젯을 못버리고 있는 사연을 써서 제출하란다. 그래서 계속 놀고 있다가 역시 마감일이 임박해서야 술술 글발이 나가기 시작했고, 그 덕을 이 잡스러운 블로그가 보는 셈이다.


암튼 IT생활사박물관으로도 불릴 수 있는 못버려박물관 런칭쇼가 잘되길 기원한다.

http://wikiseoul.com/?p=6567


2014.2.3 HiSTOPiA

2014.2.4 모든 사진 추가해서 올리고 패럴포트->시리얼포트로 수정...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