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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구의 역사를 바꿔볼까?

잡스런 2012. 9. 25. 11:38

가지고 있는 자료를 뒤적거리다가 예전에 봤던 사진 하나가 생각났다.

축구팀의 사진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지질이도 축구를 못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몸매가 운동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컴터를 보는 것에 적합하도록 진화했지만, 이런 진화의 직전(대학 때 정도)까지는 제법 날렵한 체형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로하는 운동은 젠병이었다.

어렸을 때 국민학교 다니기전....

동네 골목에서는 축구보다 딱지치기 혹은 딱지먹거, 구슬치기, 다방구, 삼팔선, 오징어 등등의 다양한 놀이를 했지만 축구공은 동네에서 귀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발로하는 운동은 영 아니다.(변두리라도 서울에서 살았는데 마치 산골동네를 연상케 하는 .. ㅠㅠ)

태어나서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골을 넣은 건 중학교 때의 한골이 전부이다. 그것도 센터링 비슷하게 골대쪽으로 우겨 찬 것이 애매하게 골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그림 같은 골은 역시 약속된 플레이 처럼 센터링 날라오는 것을 헤딩으로 한번 넣은 적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건 우리 골대였다... 이렇듯 축구는 보는 거 제외하곤 직접하는 건 아니었다. 

같은 발로 하는 거라면 족구는 조금 그러니깐 중간 정도는 하고, 야구(초딩때), 배구, 농구.. 하다못해 고1때는 핸드볼도 반대표로 뽑혔던 기억이 있는데.. 이 모난 발 때문에 축구로는 영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축구에 대한 기억은 그런데...

영국 성공회 잡지 Morning Calm을 보다가 우연찮게 축구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잡지가 발간된 연도가 1901년 8월이다.





첨부된 사진자료가 그에 해당한다. 

축구만큼이나 형편없는 영어실력으로 떠듬떠듬 내용을 읽어보니, G.A Bridle 이라는 목사가 강화의 학교에서 몇년간 훈련시킨 학생축구팀 사진이다.

강화에서 찍은 사진이 영국으로 보내지고 다시 잡지 발간에 이르는 시간을 최소한 6개월로 잡으면 사진의 주인공은 1901년 초로 예상되고, 사진의 내용 상 옷이 그리 두텁지 않은 것으로 보면 적어도 가을 혹은 봄 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1900년 가을 혹은 최대한 늦게 잡아도 1901년 봄 정도가 사진이 찍힌 연도이다.(다시 잡지 내용을 찾아보니, 제물포에서 Sydney J. Paeke가 1901년 3월에 보낸 편지에 실린 사진이다. 같이 보낸 사진이 제물포, 정도 등등 다양한 곳에서 찍은 것이고, 내용이 여행경로 등을 생각해봤을때 아무래도 그해 봄 보다는 그 전년도 가을 정도가 맞지 않을까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용에 보이는 몇년간의 교육이라는 말에서 이 몇년을 그야말로 몇년으로 잡아야 할지는 애매하지만 한 3년(이건 그 누가 보더라도 상당히 주관적인데..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1898~1899년 정도에는 강화의 한 학교에서 성공회 목사 Bridle에 의해 축구가 교육되고 축구팀이 운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뭐 학교 축구팀이니 그것도 강화라는 지역 학교의 축구팀이니 그냥 공차는 정도이지 않겠냐는 말도 하겟지만, Bridle이 보낸 내용을 읽어보면 very good game 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국에서 리그 경기 몇게임 정도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도 한다.(번역이 제대로 되진 않았어도, 대의?는 차이가 없을 것..ㅠㅠ)

그렇게 본다면 제법 공을 잘 차는 팀이었다고 생각되며, 동네 축구팀의 성격에서는 조금 벗어난 그래도 요즘 학교 축구팀의 수준에 이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축구사이다. 지루한 글이지만 벌써 눈치챈 사람이 있기는 할 거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축구경기가 열린 것은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에 의해서라고 하고, 실질적인 정식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학교에서 체육과목 중에 채택된 것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최초의 축구경기는 1905년 6월 10일 서울훈련원(옛 동대문운동장 터)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랍부와 황성기독청년회 간의 시합이라고 한다.(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http://www.kfa.or.kr/kfa_history/history_01.asp 참고)


그런데 강화의 이름모를 축구팀 사진이 간행된 시기가 1901년이니 서울의 관립 외국어 학교의 체육과목 중에 채택된 축구보다 적어도 3년은 빠르고, 몇년간 교육했다는 증언(?)으로만 봐도 정식 축구교육의 역사를 적어도 1898~1899년 경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뭐.. 이 사진 한장으로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 하자만 대한민국의 축구사를 다시 써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몇년전 이 사진을 몇명이 돌려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암튼 이런 역사적인(?) 사진을 공개하면서..

역시 morning clam 이라는 성공회 잡지는... DB하면 좋겠다는 굴뚝같은 생각만 더 들게 된다. ^^

Morning Calm No.89 Vol.12(190108)


2012.09.25 HiS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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